기욤 뮈소의 소설 ‘인생은 소설이다(La vie est un roman)’입니다. 이전에 소개해드렸던 ‘아가씨와 밤’에 이어, 이번에도 주인공의 직업은 작가입니다.
인생은 소설이다에는 대표적으로 두 명의 작가가 등장합니다. 로맹 오조르스키와 플로라 콘웨이. 특히 플로라 콘웨이는 로맹 오조르스키가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소설 속에서 창조한 인물입니다. 두 인물은 각자 작가란 어떤 존재이고, 소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언뜻 작가인 기욤 뮈소가 떠오르는, ‘인생은 소설이다’의 진정한 주인공인 로맹 오조르스키. 출간하는 소설 전부 베스트셀러인 유명한 작가입니다. 불리한 정황으로 이혼 소송을 진행 중에 있으며 아들 테오에 대한 양육권에 대한 분쟁 중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 인생에 대해,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회의와 고민을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아닙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과감한 내용을 쓰는 기욤 뮈소지만, 이제는 소설을 넘나들다니. 기발하긴 하지만 혼란합니다. 잔가지 많은 앙상한 나무라고 해야할까.
“모든 이야기는 소설가가 소설로 쓰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이야기는 마치 퇴적암에 들어 있는 화석과 같다.
소설가는 그 화석이 공룡 뼈인지 너구리 뼈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 진실을 발굴해내야 한다.”
–스티븐 킹–
<책 속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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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마치 유력한 용의자를 대하듯 나를 몰아붙였다. 사실은 이미 많이 겪어본 일이었다. 그동안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결코 주눅 든 적은 없었다. 나는 형사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굴복할 만큼 허약하지 않았다. 형사들의 얼굴에도 차츰 피로감이 묻어났다. 언젠가 악몽은 끝나게 되어 있었다. 다만 지금은 머리가 어질어질해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갑자기 눈앞이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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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카스터 빌딩 아래에는 밤낮없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댈 준비가 되어있는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나타나면 즉시 달려들어 인터뷰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대기했던 초기보다 숫자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았다. 나는 카메라 앞에 나설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에 외출을 단념하고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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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캐리의 실종이 사이비 저널리스트들에게는 그저 기분 전환용 오락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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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응한 이메일 인터뷰 때 ‘내가 소설을 쓰는 건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소설이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거나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위안을 얻길 바란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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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명백한 진실이 저절로 드러났다. 나는 방금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동타자기, 아니 컴퓨터라고 해야 훨씬 현실성이 있겠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매단 줄을 잡고 제멋대로 조종하는 중이었다.
<당신을 위한 플러스 알파>
+기욤 뮈소 17번째 신작 소설 ‘인생은 소설이다’
+[신간] 인생이 소설이면 우리는 모두 작가다
+[니가 사는 그책] 당신의 인생이 누군가의 소설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