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중국 재난 영화 대지진 (Aftershock, 唐山大地震, 2010)

중국 재난 영화 대지진 (Aftershock, 唐山大地震, 2010)

대지진
(Aftershock, 唐山大地震, 2010)

영화 대지진 (Aftershock, 唐山大地震, 2010)
개요 : 드라마 (128분)
감독 : 펑 샤오강
출연 : 서범, 장국강, 장징추, 왕자문, 진도명, 진근, 리천 등

줄거리 : 1976년 7월 28일 중국 당산.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23초간의 대지진.
악몽 같은 지진은 한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소박한 일상이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일곱살 쌍둥이 ‘팡떵’과 ‘팡다’의 가족. 행복했던 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예고되지 않았던 시련이 닥친다. 바로 27만의 목숨을 빼앗아간 지옥 같은 대지진. 폐허가 된 도시, 수많은 생명이 죽음을 맞이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쌍둥이 남매는 극적으로 살아남지만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 묻히게 된다.

쌍둥이의 생존사실을 알고 구조대와 함께 아이들을 구하러 온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쌍둥이 중 한 명만을 구해야 하는 운명의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가혹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어머니는 결국 아들인 ‘팡다’의 목숨을 선택하게 되고, 딸 ‘팡떵’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채로 잔해 속에 남겨진다. 며칠 후, 죽은 줄로만 알았던 ‘팡떵’은 다른 구조대에 의해 발견되어 지진사망자 보관소에 버려지지만, 죽은 아버지 곁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폐허가 된 지진의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소녀.
한 순간 운명이 바뀌어버린 남겨진 소녀의 운명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국 재난 영화 대지진 (Aftershock, 唐山大地震, 2010) 한국 공식 포스터

<1976년 탕산 대지진>

1976년 7월 28일 3시 42분에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에서 일어난 대지진. 리히터 규모는 7.8.

중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사상자 집계수는 사망자 242,400명, 중상자 164,000명, 불구 3,800명으로 20세기 들어서 최악의 지진 피해 중 하나였지만,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주재 외신 기자는 거의 없었고, 중국 자체 언론도 중국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읊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적극 취재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 사진을 제외한 당시의 사고지역 사진을 찾기가 상당히 힘들다. 남아 있는 사진은 피해지역의 일부만 찍혀있다. 대만에서는 사망자를 60~100여만명까지 늘려잡고 있기도 하다. 초기에 허베이성 혁명위원회에서는 사망 655,000명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이렇게 피해가 클 수밖에 없던 이유가, 탕산이란 도시가 판과 판 사이의 탄루단층 위에 놓인 도시였고, 지반에 생긴 공동으로 지표면이 내려앉는 형태의 직하형 지진이었기에, 도시가 단 한순간에 가라앉았다는 표현을 써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인구 100만을 넘는 상당한 규모의 도시였던 관계로 지진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대가 충적평야여서 액상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는데, 당시 탕산 시에 있던 건물들은 대부분 아래 기반암에 뿌리를 박지 않고 지어졌다. 당연히 건물이 버틸 수가 없었다. 실제 지진의 지속 시간은 그리 긴 편이 아니었다고 하며, 여진은 실제 지진에 비하면 별로 없는 편이었다. 지반에 단층이 발생해 지반 속에 공동이 발생하고 그 사이로 광범위한 지반이 가라앉은 형태의 지진이었기 때문.

사실 이 지진은 발생 몇 주 전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 국가지진국의 전문가 양유천을 비롯한 몇몇 전문가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탕산 근처에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것. 우물물이 요동친다거나, 가스가 올라와서 지진광을 볼 수 있었다거나 하는 전조현상들이 관측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진이 발생했던 당시인 7월 말은 하필 국정을 총괄하던 총리 저우언라이가 반년 전인 1월에 사망하고, 당주석 마오쩌둥은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시기였다.(그리고 9월 사망) 이 당시 총리직이 상당기간동안 공석이었다가 4월에 저우언라이 총리를 추모하고 4인방을 규탄하는 1차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고, 4인방의 반격으로 부총리인 덩샤오핑이 실각하는 등, 정계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총리와 실세 부총리가 모두 공석인 상태에서 수도와 가까운 탕산에서 “곧 지진이 발생할 것이다”라는 경고가 제대로 윗선에 전달될 리가 없었다.

최초 발언자인 양유천은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혐의로 공안에 잡혀가 조사를 받았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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